읽을거리2016. 5. 15. 12:04

 지금까지 개인의 공연은 어떤 면을 강조하는 대신 어떤 면은 감춘다고 지적했다. 접촉과 친교의 한 형태가 지각이라면, 지각을 통제함은 곧 접촉을 통제한다는 뜻이고, 보이는 것을 제한하고 조절함은 곧 접촉을 제한하고 조절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 용어와 의례 용어는 관련성이 있다. 관객이 받아들일 정보를 조절하는 데 실패하면 상황 정의가 무너질 수 있고, 관객의 접촉을 조절하지 못하면 공연자의 의례가 오염될 수 있다.


 접촉 제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관객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유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은 널리 퍼져 있다. 케네스 버크(1897~1993, 20세기 철학,미학,비평이론,수사학이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미국의 문예이론가ㅡ옮긴이)가 지적한 바와 같이, 관객이 공연자를 신비화된 상태로 남아있게 만드는 방식이다. 쿨리의 진술이 그 좋은 보기다.

한 사람이 자기에 대해 남들이 그릇된 관념을 갖게 하는 데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미 지적한 대로, 한 사람의 실체는 그 사람에 대한 관념과 뚜렷한 관련이 없다. 사람에 대한 관념은 상상의 산물이다. 지도자에 대한 상상은 개인적 약점을 가리려 할 때면 언제나 형식과 인위적 신비로 자신을 둘러싸려 한다. 권위자가 사람들의 친밀한 접촉을 막는 목적은 사람들이 상상력을 동원해 그를 이상화할 기회를 주려는 데 있다. ... 로스 교수가 사회통제에 관한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예법은 보통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 이용하는 자기 은폐의 수단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자기 은폐에는 다른 목적도 있겠지만 순박한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데 주목적이 있다.


포슨비가 노르웨이의 국왕에게 조언을 건네며 내세운 이론도 똑같다.

... 그러나 민중은 자기네와 허물없이 어울리는 국왕보다는 그저 성스러운 신탁처럼 모호한 인물로 남아 있는 국왕을 원한다. 군주제란 사실상 각 개인의 머리에서 나온 창조물이다. ... 민중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미덕과 능력을 군주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옳든 그르든 간에, 이 같은 이론에 함축된 극단적 논리는 관객이 공연자를 절대로 보지 못하게 막는 것으로 귀결되고, 공연자의 뛰어난 자질과 권력을 주장할 때에는 언제나 효력을 발휘한다.

물론 사회적 거리 지키기에 관객 역시 공연자에게 부여된 성스러운 속성에 경외심을 드러내고 존중하는 태도를 연기함으로써 협조하는 경우도 흔하다. 지멜은 이렇게 지적한다.

두 번째 결정에 따르는 행동은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이상적 영역이 있다는 느낌(다른 영역에서도 작용하는)과 부합하는 행동이다. 관계하는 상대에 따라 방향과 크기는 달라지지만, 사람에게는 결코 침범할 수 없는 고유 영역이 있다. 한 사람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면 그의 인성 가치가 무너진다. 그 고유 영역에 한 사람의 명예가 걸려 있다. '너무 가까이 왔다'는 말은, 한 사람의 명예에 대한 모욕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말이다. ..


뒤르켐도 비슷한 주장을 한다.

사람의 인성은 성스러운 것이다. 인성을 침해하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가장 위대한 선이다.


쿨리의 관점이 가진 함의와는 달리, 사람은 자기보다 우월한 지위의 공연자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와 비슷하거나 낮은 지위의 공연자를 대할 때도(정도는 다를지도 모르지만) 분명 두려움과 거리감을 느낀다.

접근 금지가 관객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 공연자에게는 자기가 선택한 인상을 잘 가꿀 여유를 주고, 자기와 관객 모두를 위해 가까이서 보면 파괴될지도 모르는 공연을 보호하고 위험에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공연자를 두려워해서 관객이 건드리지 않는 문제라면, 그것은 폭로되면 공연자가 수치심을 느끼기 쉬운 문제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리츨러의 지적대로, 그래야 우리는 한 면에는 두려움이, 다른 면에는 수치심이 새겨진 사회적 마술 동전을 갖게 될 것이다. 관객은 공연 이면의 신비스러운 힘과 비밀을 감지하고, 공연자는 비밀이 하찮기 짝이 없음을 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민담과 통과의례가 신비에 숨겨진 진짜 비밀은 종종 신비할 게 하나도 없다는 점임을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pp.90-94

어빙 고프만, 자아연출의 사회학-일상이라는 무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연기하는가

Posted by 누뉴누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