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롤리타1962(큐브릭)보다 롤리타1997(아드리안린)을 더 감탄하면서 봤다. 잘만들었다거나 enjoyed했다는 감탄은 아니었는데 빠져들 수 있고 문제적이고 여운이 남았다고 해야하나..
전자가 더 iconic하고 또 큐브릭 영화니까 '영화 롤리타' 하면 1962 버전을 얘기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아이유가 컨셉을 따왔다는 부분들은 둘 다 섞여 있는데 1997의 것이 더 많다. 아무래도 1962는 흑백이니까..?)
두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두 감독의 명성 차이가 크다는 것, 이름의 힘을 확실히 느끼게 된다.
한 영화를 많이 얘기할 기회가 없으니까 나랑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을 못봐서
언젠가 구글링해보고 싶다고 생각만 오래 했었는데
지금 둘을 비교한 글들을 읽고 있다.
읽으면 맞장구도 치고 싶고 반박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블로그에 온 것 같다.
영알못인데 누가 검색하다 들어올까 겁난다ㅎㅅㅎ
정리하면
1. 원작에 충실: 1997 (다만 블랙코미디가 원작의 포인트인데 그걸 놓쳤다는 의견)
2. 블랙코미디: 1962
3. 드라마틱: 1997 (이게 좋은 기준인 건 아니다)
4. 에로티시즘: 1997
5. 일관성에서 오는 웰메이드의 느낌: 1962
6. 롤리타 캐릭터와 배우의 매치: 1997 (1962의 배우는 님펫 나이를 이미 넘겨보인다)
정도인데
나에게 2.와 5.는 이 소재에서 추구해야할 바라고 굳이 생각되지 않아서 1997이 더 내 취향에 가까웠다.
드라마타이즈하는거
좋은 영화의 요소는 아닐 뿐더러 개인적으로도 별로 안좋아하는데
1997의 emotional하고 드라마틱한 면이 이상하게 좋았다.
변태 이야기에 그렇게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드라마타이즈는 좋은 것 같다ㅋㅋㅋ
리메이크들은 꼭 원작을 기준으로 비교되기 마련인데
그 비교가 유의미하기도 하고, 원작과 떨어뜨려놓고 그 작품 자체만을 봐야할 때도 있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마다 다른 얘기가 나와서 그게 또 재밌다.
원작 소설을 아직 못읽어봤는데 1997에서 대사는 기본이고 제일 첫 구절을 아예 그대로 내레이션으로 썼던게 인상깊어서
원서로 읽고 싶어서.....계속 미루고 있다..ㅎㅎ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
느끼기에 1962는 극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의미에서 말하는 극이냐면, 한편의 이야기를 보여드릴테니 어떤지 함 보세요~ 하면서
적당한 검열과 통제를 통해 조심스럽게 원작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선보이려는 시도 정도로 보이는 그런거.
블랙 코미디, 위트, 이런 얘기가 있던데 나는 그다지 탁월한 위트를 느끼지 않았지만 그 얘기들도 이런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간다.
The 1962 Lolita was a product of its time, unfortunately, meaning it was heavily held back by censors. Needless to say, Kubrick is no prude (one only has to watch Eyes Wide Shut) to know that, but his version of Lolita was very tame, with almost none of the sexual innuendos littered throughout the novel — in fact, there was very little physical contact between Lolita and Humbert, the scenes often fading to black before anything happens. (http://www.pacejmiller.com/2011/04/07/lolita-novel-1962-film-and-1997-film/)
원작에 손을 많이 댄 것이나, 섹슈얼한 장면들을 검열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근데 원작과 다르다는 점이나 어떤 장면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무조건 영화를 나쁘게 만드는게 아니라 사실 방식의 문제다.
원작과 많이 달라졌어도 그 나름의 맛이 날 수 있고,
섹슈얼한 장면을 안보여주는데도 야할 수 있다.
조심스럽더라도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근데 큐브릭 버전은 잘 모르겠다.
신체적인 접촉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더라도
에로티시즘이 집중적으로 조명되지 않더라도
두 사람 사이의 기류에서 오르고 내리는 변화는 유추되어야하는데
그런 부분이 없다.
어떤 관계인지를 짐작할 뿐 또렷이 보지는 못했다.
특히 여자애한테 험버트가 어떤 존재인지 여자애 시각에서 볼 수 있는게 없다.
소아성애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여자애가 먼저 유혹한 게 아니라는 거, 싫어했다는 것만 알겠고 첫 남자로서의 험버트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미치도록 사랑한 남자는 퀼티뿐이었다' '남편은 우리 무슨 사이였는지 모르니까 입 조심해'라고 할 때도 이런저런 깊이가 부족했다.
험버트를 아빠로 보고 의지했지만 그래도 성적인 관계까지 맺는 사이였다면 뭔가가 많이 있어야하는데 없는 느낌...
분명 어린 애가 엄마도 돌아가신 상태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일들인데, 그렇기 때문에 생긴 질곡들이 있을텐데, 마치 연애해볼 만큼 해본 성인 여자 같은 태평함과 태연함..
그게 '둘이 이상한 관계인 건 맞았나 본데, 백퍼 험버트가 잘못했네'라고만 생각하게 만든다.
안전하게 가려고 한 거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다양한 각도가 들어있을수록 재밌지 않나?
소아성애자 나쁜거 당연히 아는데 왜 봤는지 모르겠는 느낌도 솔직히 들었다.
금기시되는 소재를 다루기엔 너무 제약이 많았던 시기였나보다.
큐브릭이 연출을 못했다는게 아니라,
검열 당한 영화는 천재가 만들어도 별로일 수 있다는 한 사례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위에서 내가 방식의 문제라고 한 건 "뭐가 다르거나 없다고 해서 꼭 나쁜 건 아니다"라는 의미에서였지만,
감독이 자기 의지대로 표현하지 못한 영화가 좋은 영화이기 어렵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ㅠㅠ
위 블로그에서 보니깐 본인도 이런 말을 했다고:
Kubrick in fact said that if he could have done it again he would have emphasised the erotic aspect of the novel with the same weight Nabokov did, and that if he knew censors were going to be so tight he might not have made the film at all.
불쌍하당...
큐브릭 버전 지지자가 filmbalaya.com에 글을 썼는데 (https://filmbalaya.com/2010/06/28/remake-wars-1-lolita-1962-vs-lolita-1997/)
큐브릭 영화기 때문에 더 낫다는 식이긴 하지만
이런 지적은 동의:
"Lyne’s directing on the other hand is inconstant. Over stylized shots to display the youthfulness of Lolita, paranoia of Humbert, and mysteriousness of Quilty are distracting and don’t fit in with the flow of the film."
over stylized하고 inconstant directing이라고 나도 느꼈다.
1997 버전이 좀 스타일에 집중하고, 에로틱하고, 드라마틱하고, 혼란스럽다.
저 글 쓴 사람은 1997 험버트가 롤리타를 처음 보는 장면에
1962의 (롤리타 선글라스로 불리는) 하트모양 선글라스를 스프링쿨러로 대체한 것에 대해서
"스프링쿨러에 의해 '사정' 당하는(ejaculated onto by a sprinkler)" 이미지가 shameless하다고도 했다.
저급하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이해가 간다.
97버전을 보다보면 미적으로 즐길 만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조차 정말 이상한 작품이야! 라는 말이 잘어울린다.
사실 원작 소재 자체가 그렇게나 문제적인데 당연히 욕이 나와야 잘 살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듬.
내가 생각하는 롤리타 소재의 매력은 오히려 이렇게
나도 그 에로티시즘에 빨려들어갈 것 같다가, 다시 보면 너무 더럽고, 미스터리하다가 끔찍하고, 슬프기도 하고,
감상하는 사람을 왔다갔다 하게 만드는 데 있는 것 같다.
큐브릭 버전은
더 많이 얘기하고 싶거나 계속 기억나거나 하지는 않는 영화였다.
(같은 이유에서, 쉽게 칭찬할 수 있는 영화는 사실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다.)
오 이만큼 쓰고 댓글들을 보니 공감가는 게 많다.
방금이랑 똑같은 얘기한 사람도 있고
Camila:
The fact that the great Kubrick has directed 1962 film doesn’t make it instantly better, you have to feel it running through you veins, remember it and feel trapped by it (Like you feel about the book, at least in my case). Although 1962s is a really good movie even rated as better it doesn’t get into your head and thoughts, even emotions, as Lyne’s one. It’s a matter of “likes” I guess…But, I really think that 1997s version is way better, more Lolita itself.
Leo:
You’re a poser man, you said that the versión of Kubrick is better because is a Kubrick movie. The 1997 versión is better than the Kubrick version, which was mutilated and self censored by Nabokov Himself. The 1997 Lolita is more erotic and true to the novel of Nabokov than the Kubrick version.
Rosa:
So let me get this straight..your choosing the 1962 version because of Kubrick?
You got to go more than that otherwise your not a very good critic.
I just saw the 1997 version and its already my favorite. I saw the 1962 version and I liked it but I felt like some of the characters weren’t exactly “playing” the characters with a whole heart like in the 1997 ver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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