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다~~~ 소리도 많이 지르고 어이없어서 웃기도 하고
일단 "어떤 하나의 답을 중심으로 해도 퍼즐이 맞춰지지 않기 때문에 잘못 만든 영화, 무책임한 영화"라고 할 건 아닌 것 같다.
근데 같이 본 사람 한명이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과 같은 영화인 것 같다고 했을 때는 또 그거랑 결이 다르다고 말하게 되더라.
홍상수 영화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키치한 것들을 가지고 그것들을 통해서만 적절하게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한다는
일관된 흐름(을 염두에 두고 보게 되어서 그런지)이 있다.
자유의 언덕은 시간과 기억의 퍼즐이 맞춰질 수 없다는 것 자체를 말하려고 한 영화였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퍼즐 조각을 끼워맞추려고 애쓰는 건 영화가 말하려고 한 본질이랑 맞지 않게 되는!
근데 곡성은 약간 다른게,
이유를 알 수 없고 누가 정확히 나쁜 놈인지 누구를 탓해야하는지 어느 시점에 어떻게 일이 풀렸으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었을지 등등을 가릴 수 없음을
의도하기는 했지만, 그걸 말하려고 한 영화야 그러니까 알 수 없는 거구나 받아들이고 추리를 그만두는 게 맞아~ 라고 말하는 게
자유의 언덕 경우에서처럼 맞는 말이지 않은 것 같다.
곡성의 주된 욕심은 장르적인 거였으니까! 가 내가 생각하는 이유다.
곡성엔 노림수가 많다.
오바스럽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장면도 군데군데 있다.
무섭게 하려고, 놀래키려고, 특정한 분위기를 주려고, 어떤 상징을 던지려고 의도하는 게 주를 이룬다.
실제로 "괜찮은 한국의 오컬트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칭찬이 (감독에게나 작품 평가에나)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 안에서 우리가 뽑아낼 수 있는 "진실"들에는 다가갈 수 없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장르적인 효과>와 더불어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위한 것이지
그것 자체를 말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건 아니다.
오컬트와 호러라는 장르를 즐기는 것이 그것에 우선하고,
따라서 뭐가 사실이지? 이 때 이랬던 건 이런 건가? 이런 추측들을 잔뜩 하면서 즐기는 게 적절하게 여겨진다.
물론 추측해봤자 백퍼센트 명확한 답은 안나오지만. 애초에 답을 찾기 위해 추측하는 게 아니니까.
맥주 한잔 하고 쓰니까 구어체가 잘나온다 흐흫
그 모든 알수없음이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주디스 버틀러가 그랬나? 피해자는 "왜"라고 묻는 자, 피의자는 "because I can."이라고 답하는 자라고 그랬는데..
왜 하필 나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건 내 딸이 먼저 아팠으니까 그랬던 거잖아, 넌 도대체 누구야! 라고 물어봤자
아무도 속시원한 답을 줄 수 없고, 주지 않는다는 점.
니가 사람을 의심하고 해치려 하니까 그렇지, 라는 어이없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고
누구를 탓해야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고
그렇게 상황에 빨려들어가버린 속수무책의 상황이
잘 그려져서 좋았다.
헛웃음 나오는 부분들과 오바같은 부분들도 있었지만 (그게 약간 치명적이었지만)
이만큼 이야기와 장르적 노림수가 잘 엮여져 있으니 수작이라 할 만하다.
영화의 플롯과 내러티브는 성역이어야하고, 이런 장르는 이런 재미를 추구해야하고, 이런 기법은 이렇게 끝마쳐야한다는 생각들을 가진 사람들은 확실히 불호하는 것 같다. 난 영화 밖에서 이미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아니어서 '이런 부분은 좀 그렇네, 이것 때문에 좀 떨어지네' 싶은 건 많아도 즐겁게 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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