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2016. 5. 12. 18:41

찰스 테일러 <불안한 현대사회The Malaise of Modernity(1991)>


수업에서 읽는 책인데, 학생들이 쉽게 흥미를 갖고 파고들 만한 책으로 선생님께서 잘 고르신 것 같다.

근대 이래 인간이 맞게 된 위기에 대해서는 예술, 문학, 철학, 일상 담론 등 여기저기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어느 분야의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들어도 비슷한 놈을 꼭 마주치곤 했다. 너무 익숙해서 더이상 현상을 꿰뚫어보려고 할 필요조차 없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래서 더, 현대 사회를 명료하게 비추는 시각들이 귀해진다. 현대를 논하는 글에는 낯익은 풍경들이 묘사되어 있기 마련이라, 대중 누구에게나 재밌고 의미있을 책 같은데, 책 표지나 제목이 잘 안팔리게 생긴 점이 안타깝다.



 (1) 불안의 첫 번째 근원은 개인주의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주의가 근대 문명 최고의 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어떠한 신념을 신봉할 것인가를 양심에 따라 판단하며, 우리 조상들은 도저히 가늠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던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의 형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런 권리들은 일반적으로 법적 체제에 의해 보장되고 있다. 원칙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을 초월해 있는 가상적인 신성한 질서들sacred orders의 요구에 더 이상 희생당하지 않고 있다.

 누구도 이러한 [근대 문화의] 성과를 되돌리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근대 문화의 성과는 아직도 완성되지 못했으며, 경제적인 조치들이나 가족 생활의 양태, 또는 전통적인 계급 관념 등등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되는 자유를 아직까지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을 유보하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근대적 자유란 구시대의 도덕적 지평들로부터의 단절을 통해서 성취된 것이다. 옛날에는 자신을 보다 더 큰 질서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다. 어떤 경우, 이 큰 질서는 바로 하나의 우주적 질서, 즉 "존재의 거대한 고리great chain of Being"를 의미하였다. 인간들은 그러한 [우주적 질서] 속에서 천사나 천체들, 그리고 자신과 함께 생활하는 지상의 다른 피조물들과 더불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졌다. 우주의 이런 차등적인 질서는 인간 사회의 계급 질서 속에 투사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적절한 지위와 역할이라고 하는 주어진 위치에 얽매여 있었으며, 그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근대적 자유는 이런 질서들에 대한 부정을 통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런 [전근대적인] 전통적 질서들은 우리의 자유를 제한했지만, 세계와 사회적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우리 주변의 사물들은 결코 인간들의 기획에 유용한 잠재적인 원재료 또는 도구들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 사물들도 역시 존재의 고리 안에서 자기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독수리는 그냥 한 마리의 새가 아니라 전체 동물계의 왕이었다. 동일한 근거에서 사회의 의식과 규범도 단순한 도구적 중요성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전통적인 질서에 대한 불신은 "탈주술화disenchantment"라고 불리어져 왔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사물들은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마력을 상실하고 만 것이다.

 이런 탈주술화가 자명하게 좋은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지난 200년간 격렬한 토론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이 책에서 나는 이런 논쟁에 주목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일부의 사람들이 인간의 삶과 의미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긴 것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행위에 관한 보다 광범위한 사회적, 우주적 [의미의] 지평을 상실하면서, 개인들이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삶의 영웅적 측면을 상실한 것이라고 기술하였다. 사람들은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을 정도의 보다 높은 목적 의식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알렉시스 드 토크빌A. Tocqueville(1805~1859)은, 민주화된 시대에서 사람들이 찾고 있는 "자질구레한 세속적 쾌락petits et vulgaires plaisirs"에 대해 언급하면서, 때때로 이와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열정의 결핍증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키에르 케고르Soren Aabye Kierkegaard(1813~1855)도 "현대"를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니체Friedrich W. Nietzsche(1844~1900)의 "최후의 인간들letzte Menschen"은 이런 몰락의 가장 밑바닥에 있다. 그들은 "가련한 안락erbarmliches Behagen" 이외에는 더 이상 삶 속에서 아무런 야망도 갖고 있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의] 이런 목적 설정 상실은 마음의 시야가 좁아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삶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시야를 상실해 버렸다. 토크빌에 따르면 민주적 평등을 통해 개인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에, "자신을 자기 마음의 고독 속에 가두어 두도록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의 어두운 면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로의 초점 이동에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은 [높낮이 없이] 덤덤하게 되고 협소해진다. 우리의 삶은 갈수록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우리는 타인의 삶이나 사회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진다.

 현대 사회를 형식적으로 정의할 때 가장 잘 알려진 세 가지 요소, 즉 [개개인들에게 삶의 형태의 선택을] "허용하는 사회permissive society"에 의하여 야기된 결과물들, "자기 중심적인 세대me generation"의 행위들, "자기 도취narcissism"의 만연 등에 대하여 사람들이 우려하게 되면서, 요즈음 현대 사회에 대한 걱정이 다시 표면화되었다. 개개이들의 삶의 지평들이 [높낮이 없이] 덤덤해지고 협소해졌으며, 그 결과 비정상적이고 개탄할 정도로 자기에만 몰두하는 일self-absorption이 당대 [서구] 문화의 고유한 형태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다루고자 하는 첫 번째 주제이다.

Posted by 누뉴누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