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즐거움을 끊임없이 풀어놓지 않는 이상, '쉽게 파악되는 존재'로 여겨지는 사람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보통 자신이 얼마나 복잡하고 특별한 존재인지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그는 간단하게 파악이 가능한 타입으로 분류된다. 이런 상황은 온갖 학자들의 이름을 걸핏하면 나열해대고 사유의 빈곤함을 약빤 문장의 흐름으로 덮어보려는 시도들에서 종종 마주친다. 나는 그 사람을 아주 귀엽게, 친근하게 여긴다. 그의 개인적인 공간을 존중하고, 그 안에서 즐거우시기를 바랄 뿐이다. 더 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그 사람에 대해 쓰고 싶은 말도 여기까지가 최장인 듯하다) 비꼬거나 무시하려는 의도는 전혀 전혀 없다. '아직' 별 의미 없는 사유들도 그에겐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 하지만 그런 글들은 사유가 아니라 자의식 과잉이라는 걸 정말 모를까요?? 본인도 다 알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고 너그러이 구경하는 편이 좀더 낫다.
어떤 사람: 그는 스스로 자존감이 약하고 불안정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며, 듣기만 해도 거칠고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갱신하듯 쏟아낸다. 주변에 누가 듣고 있든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쁜 놈들의 사진과 신상정보 일부를 약간의 닉네임과 함께 보여준다. 이 사람은 자기가 힘들 때 나를 찾으며, 내가 힘들 때는 나의 힘듦을 지레 짐작한다. 말하지 않은 것들을 넘겨 짚고 본인의 경험을 투영하여 격한 공감을 해주거나 내 삶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사람일지 추측하며 내게 조언을 해준다. 그런 거침없는 모습, 상처를 내보이며 상처에도 불구하고 한껏 열려 있는 상태가 매력적이다. 나는 그와의 대화에서, 기호로 표시된 것들을 둘러싼 독자들의 연합(롤랑바르트)이 이런 것인가 하고 흥미로워한다. 그의 말 속에서 나와 내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체는 중요하지도 않고, 바로잡을 이유도 없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을 법한 무의식에 가까운 개인사들을 자기 일처럼 나눌 수 있는 사이이면서, 동시에 거짓이 난무하고 무엇이 말해지든 상관이 없는 사이다. 이 사람은 본인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 건강한 자아상을 갖추고 perform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워 할 사람임을 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힘들 때만 나를 찾고, 힘들지 않을 때는 나에게 쓸 에너지가 1도 없다고 해도 그런대로 이해한다. 친하면서도 친구는 아닌 사이.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바라고 바라왔던 '좋은 남자친구'를 이젠 만났으니 앞으로 다른 친구들에게 시간을 투자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이라고 본인도 이야기했다. 몇년 후에 만날지 모르지만 잘 지내고 있겠지
기록/더 사적인 기록2016. 6. 5.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