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고 술을 먹었으니깐 쓰는 일기!
홋카이도 답사에 잘 다녀왔다.
방치하니 뚝 떨어지는 블로그 투데이 수가 신기하다.
고정된 방문자가 있던 것도 아닌데. 신기해
진이 빠진 채로 어제 낮에 귀국해서 저녁에는 또 다른 여행의 비행기와 숙소를 예약했다.
과제를 했어야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나마 즐겁기라도 한 일을 한 것인데,
오늘 아침에 후회했다. 그래서 후회하는 마음으로 과제를 열심히 촉박하게 해서 제때 내는 데 성공했다.
과제 냈다고 하니까 마침 불러주는 친구가 있어서 밥겸술도 먹고 왔다.
일본에서 잠을 아껴가며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몸이 망가져있었는데
어젯밤에 8시간 잔 덕분인지 멀쩡히 잘 마시고 들어왔다.
건강관리 잘해야지.
내 일은 아닐 것 같았던 일들이 인생에는 일어난다. 크든 작든.
아마도 그러려고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까 꼿꼿한 자세로, 삶 이곳 저곳에 자꾸 선을 긋고,
진리 명제를 구사하는(동재오빠가 보여준 꼰대 테스트에서 본 말인데 뇌리에 박혔다)
사람들은 살기를 멈춘지 오래인 것..
이런 말을 쓰다니 좀 취했나보다. 이런 얘기 하는 거 자체가 꼰대 아닌가?ㅋ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남의 일로는 익숙하지만 내 일로는 새로운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게 당황스럽지만 재미있다.
이런 일을 겪을수록 모든 일에 약간의 거리두기도 쉬워진다.
23살부터 25살까지의 시간들에 "와 내가 이렇게 변했네" 하는 발견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부분도 알아 간다.
5월에 벌써 두 번의 여행을 했고, 둘다 느낀 것도 많고 즐겁고 좋은 시간이었다.
지나가는 순간들을 세세하게 잡아두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나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일기나 블로그에 쓰는 일이 잘 없다.
귀찮다. 그리고 어쩌면 사실 그렇게 박제하기가 싫은가보다.
말은 별 것 아닌 것이다. 사회과학적인 통찰이든, 인생의 지혜든, 느끼는 게 소중하지 말은 언제나 새삼스럽다.
내가 처음부터 잘했고 계속 잘해온 것은 거의 다 말로 이루어져왔는데,
말이 지겹고 말보다 강하고 깊은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좋다는 게 내 인생의 역대 최대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 걸 느끼기 전까지는 글 잘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 뒤로는 아주 소통을 해야할 상황이 아니고서는 굳이 막 이렇게 저렇게 쓰지 않는다.
안쓰는 것과 못쓰는 것이 같은 것이 되었다.
글 잘쓴다는 말 듣는 사람들의 글에도 마음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읽는 것에 한해서는 눈이 높아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술을 먹으니까 편하게 똥글을 쓸 수 있다.
어쨌든 기록에 대한 얘기로 돌아가서, 술버릇처럼 동영상을 자주 찍는데, 이 습관이 아주 뿌듯하다.
2016년의 취객으로 남을 두 사람이
이전 사진들을 지워내어 깨끗한 나의 아이폰에 담겨 있어 무척 힘이 난다.
새벽 5시에 일본 길거리에 뛰쳐나간 친구들 덕분에 너무나 힘들고 즐거웠다.
연구기간 내내 머문 공원에는 엄청난 미끄럼틀이 있었는데
그전에도 계속 술먹고 타보고 싶었지만 조원들은 이렇게 화끈하게 같이 타주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누군가 내 페북글들에 대해 "맥락을 안써주는 것 같아"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다.
사랑스러운 것들을 계속 경험하며 살고 싶다.
어릴 때는 사람의 타입에 자주 주목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사람의 지층을 보게 된다.
어릴 때는~하는 말을 하고 있는데
꼰대같은 소릴 하려는 게 아니고,
내가 열심히 산다고 살 때의 그 열심히에 해당하는,
그런 열심히 살아온 사람의 흔적들을 보는 것이 즐겁다.
곳곳에 당당하게 묻어있는 취향도 보기 좋다.
페북에 이런저런 생각과 일상을 공유하고 드립도 치는 문화가 조금 사라진 것이 아쉽다.
(모바일이 생활에 침투할수록 sns는 삶의 멍청한 기준이 되어버리고, 인터넷은 아무 쓰잘데없는 것들이 바이럴하게 퍼져나가고, 아무 의미도 없는 싸움들이 격렬해지는 곳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고 요즘 느꼈다. 아무 의미도 없다! 과격한 주장을 하니 기분이 좋네)
그런데 그런 문화를 향유할 만한 나이에 그런 문화가 흥했던 세대인 나는,
지금의 내 나이에 맞게 그런 문화를 향유할 방도는 어떤 식이어야할까가 궁금하다.
20대 중반은 참 묘한 나이다. 우리는 그냥 유연해지고, 아재 흉내를 낸다.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점점 더 멍청한 기준들에 잠식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알아봐야만 하는 상황이 된다.
사람을 대할 때 판단하는 버릇을 줄이고, 적당한 거리에서 오래 보기를 지향해야할 것 같다.
앗 남의 페북 고고학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누군가가 내 페북을 고고학하면서 like를 천천히 하나씩 다 눌러주었다.
다음부턴 나도 고고학할 때 티내야겠다. 기분좋은 들킴이네
글은 불행한 사람이 쓰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불행을 느낄 때 더 많은 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 쓰는 이 글은 뭔가 다르다.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추구하지 않고도
깊은 행복감을 느끼는
안정적인 정서상태를 지난 1년?간 서서히 갖기 시작했는데
그런 종류의 행복감에 적응하는 중인 것 같기도 하고..
깊은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들이 지나간 뒤
그것들을 아쉬워할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를 헷갈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무조건 감사한 일이다.
가치관이 많이 변했다.
나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되게 좋아하는 것 같고, 그래서 사람들과 나눌 만한 글을 못쓰는 것 같다.
글쓰는 직업은 절대 싫은데 영상 만드는 일은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블로그에 오랜만에 들어온 이유는 뭐였냐면
2년 전에 페북에 공유했던 글을 다시 올리기 위해서였다.
http://m.media.daum.net/m/media/newsview/20140904211511365
'갑-되기'가 시대정신, 이라는 유명한 진단이 와닿아서 공유했었다.
그 때는 아직 전공수업도 듣고, 이런 저런 이론과 사상들을 접할 때였어서
그런 말의 정확함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글을 공유할 때 따온 quote도
"갑-되기가 시대정신. 약자가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약자를 혐오"였다.
2년이 지나 오늘은 글의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어왔다.
그리고 같은 글을 또 다시 이렇게 보게 되는 경험을, 오랜만에 했다. (구어체로 쓰다 보니 쉬운 대신 전달력이 약해지는 것 같다..)
강한 것은 아름답고, 약한 것은 추한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추한 것이 추한 것이다.
바쁜 날들이 또 기다리고 있다. 내 안팎에 사랑스러운 것들이 계속 많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