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는나중에

죽음 이전의 죽음 명상, 어린 시절, 지금

누뉴누누 2016. 8. 6. 14:23

책을 읽다가 '죽음 이전의 죽음 명상'이라는 것에 대해 들었다.

자신의 육신을 포함한 물질적인 형상들의 죽음에 대해 명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걸 읽고 한 기억이 떠올랐는데,

등촌동 살던 다섯살 때 내 방(당시엔 언니방 내방 이 아니고 노는 방 자는 방으로 구분했던 것 같은데 나는 노는 방을 내 방처럼 기억한다)에 앉아서

죽은 이후를 상상했던 때였다.


인상 깊었던 순간들은 아무리 어릴 때라도 기억에 남아서

두살 때 이불의 무늬를 바라보며 멍때리던 순간에

엄마인지 아빠인지가 그런 나를 '얘가 일어났는데 울지도 않고 멍하니 있네'하면서 사진 찍던 것도

기억에 남아 있고 심지어 그때 사진도 있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누가 나를 주목하고 있을 때 신경쓰지 않고+모른척하고 내 하던 일에 집중하는 성격이 형성되어 있었닼ㅋㅋㅋㅋ 얼룩덜룩한 무늬에서 얼굴 모양 같은 거 찾아내가지고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음)

그 사진을 나중에 알아보고 그 때가 그 때인걸 깨달았을때 엄청 이상한 기분이었었다.

나는 그때 멍때리던게 지금 멍때리는 거랑 똑같이 기억나는데

그 때 나의 모습은 완전 오동통한 아가라는 게.....ㅋㅋ

스물다섯살이 된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주아주 어린 시절의 나는 지금의 나처럼 나를 인식했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아직도 있고 그런게 참 신기하다.


아무튼 그래서 

죽음에 대한 나의 최초의 상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그 순간이 인상깊어서 다섯살때부터 성장과정 내내 떠오르곤 했다.

"엄마, 죽으면 내가 없어지는거야?" "응" "그럼 내가 보거나 듣는 것도 없는거야?" "그렇지, 죽은 사람은 말도 못하지"

대충 이런 대화를 한 다음에

앉아서 하늘이랑 구름을 생각했던 것 같다.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한 상상이었던 셈이다.

거기 어딘가에 내가 있긴 있는데, 그 나는 없는 거구나.

그럼 하늘에 있는 나도 안보이고, 그런 나를 찾아보는 나조차도 없는 거구나! 

하고 머릿속에서 두 개의 나를 지우니까 

어릴 때라 그런지, 내가 없는 상상이 쉽게 되었다.

그래서 잠시동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없는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건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스무살 이후에도 이런 기분이 든 적이 있나 기억이 안난다),

종종 '엇 내가 누구지' '지금 이 몸은 누구꺼지' 하는 느낌이 갑작스레 드는 순간들이었다.

게슈탈트 붕괴처럼 그냥 가끔씩 오는 당혹스러운 기분인데 이건 데자뷰처럼 꽤 보편적인 경험일 것 같다.

주로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방으로 걸어갈 때 이 느낌을 많이 받았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아무것도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들에게서 나로서는 정말 이상한 모습들을 많이 보고,

그들이 가엾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무엇을 붙들고 있는 것인지

'나에게 답이 있고 이걸 전해주면 해결된다'는 생각이 누구에게 얼마나 진실인지

나는 나를 알 뿐인데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게 그냥 오만은 아닌지

그런 시도를 하는 순간 나는 미끼를 물어븐 것일지도 모른다는

아마도 그런 이유들에서

그냥 포기한다.

그리고 갈수록 그렇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쓰기 시작한 글인지 모르겠지만...

이것과 관련된 태도들이 나의 20대 중반의 주요한 가치관 변화인 것 같다.

이전에는 1. 소중한 것, 아름다운 것이 있다 2. 그것을 지키겠다 3. 그러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겠다

이런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 고집이 나에게도, 소중한 것들에도 상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