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텍스트성과 감정 경험이 뒤얽히는 양상

누뉴누누 2016. 5. 28. 11:45
텍스트성은 감정 경험의 중요한 수식어가 되었다. 감정을 “글로 쓰는 것”은 감정을 공간에 “고정”하는 것이다. 어떤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내가 그 감정을 알게 되는 것 사이에 거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입말이 글말로 옮겨지면, 말은 (귀로 듣는 대신) 눈으로 “볼” 수 있게 되고, 언어행위에서 분리되어 탈맥락화된다. 
감정을 명명하고 이로써 감정을 조절하는 반성적 행위는 감정의 존재론을 낳는다. 곧 감정을 반성하는 행위에 의해서 감정은 현실 속에 고정되고 감정을 느끼는 사람의 자아의 내면에 고정된다. 감정이란 본디 순간적,일시적,맥락적인 것이라고 할 떄, 감정에 대한 반성은 감정의 본질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글말은 언어와 사유를 탈맥락화시키며 입말의 규칙을 입말의 행위와 분리한다. 글말로 고정된 감정은 관찰과 조작의 대상으로 변한다. 감정을 글말로 옮긴다는 것은 경험의 무반성적흐름에서 떼어내는 것이요, 감정적 경험을 감정적 언술로 바꾸고 관찰하고 조작할 수 있는 사물로 바꾸는 것이다. 월터 옹Walter Ong은 인쇄술이 서양의 사유에 미친 영향을 다룬 저서에서 글말의 이데올로기가 “순수한 텍스트” 개념ㅡ텍스트의 존재론을 논할 수 있다는 생각,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저자가 의도한 의미 내지 맥락적 의미와 분리할 수 있다는 생각ㅡ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감정을 글말로 고정하게 되면 “순수한 감정” 개념ㅡ각각의 감정이 저마다 별개의 실체라는 생각, 감정이 머무는 장소가 자아라는 생각, 감정이란 텍스트에 기록될 수 있고 고정된 대상으로 파악될 수 있다는 생각, 감정을 자아와 분리시켜 관찰,조작,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생각ㅡ이 생긴다.

에바 일루즈, 감정자본주의, p.72